[기사] 지금 여기 예수의 걸음을 따르기 위해 병역을 거부합니다 가져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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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예수의 걸음을 따르기 위해 병역을 거부합니다.
[인터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하동기 씨
2009년 07월 07일 (화) 14:34:38고동주 기자 kobio@hanmail.net

  
▲하동기 씨는 연세대 신학과 학생회장을 맡아 활동을 했다.

“2006년 평택 대추리(미군기지 이전사업 터)에서 작은 전쟁을 겪었다. 내 친구와 선후배들일 것만 같던 군인과 전경들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과 학생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말이다. 그 때 폭력의 사용을 강제하는 국가의 요구를 거부하겠다고 다짐했다.”

2009년 7월 7일은 하동기 씨의 입영일이었다. 그러나 하동기 씨는 병무청에 입영을 하지 않을 것을 알렸다. 그가 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동기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목사가 꿈이었다. 교회에 성실하게 나가고 성경도 열심히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학과’에 입학하고 성경을 읽을수록 자신에게 들리는 예수의 목소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로 압축됐다. 하동기 씨는 “특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에 ‘원수’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한다.

2005년 12월 27일 하동기 씨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나는 용기가 없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의 길이 결코 여기(군대)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예수의 길이 “어느 상황에서든 누구든지 소외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을 사는 것”이라 믿는 그다. 그로서는 국가가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이웃을 갈라놓고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군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길이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의 평화를 주로 얘기한다. 사화구조적인 불의가 개인의 평화를 파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병역 문제나 평화에 대해서 고민하던 하동기 씨는 교회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선배나 지도자가 별로 없어서 병역거부를 주저하기도 했다. 그의 고민이 신앙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김두식 교수의『칼을 쳐서 보습을』이었다. 책에서 이전에도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고, 신학적인 근거들도 마련돼 있다는 걸 보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더 가질 수 있었다.

  
▲"김흥겸('민중의 아버지' 작사) 선배의 삶을 보며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길임을 배웠다"는 하동기 씨

신학교에서 구약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하동기 씨는 “기독교에서 구약은 전부다 예수그리스도라는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역사의 흐름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을 해석하지 않으면 분명히 오류가 생긴다.”고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전쟁의 신으로 표현하고 이방인을 쳐부수는 장면이 있지만, 이는 상징으로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목사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하나님말씀을 공부하는 데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자식의 마음을 꺾을 수가 없다면 기도로라도 응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어머니가 하동기 씨는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한다. 젊은 나이에 이혼을 하시고 홀로 자신을 키워오신 어머니를 하동기 씨는 가장 존경한다. 어머니 덕분에 자신이 공부를 하고 신앙생활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려주셨다”며 자신 역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예수의 걸음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한다.

“전과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어렵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하고 싶고 또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하동기 씨. 신학과 안에서 연극동아리를 하는 그는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함께 소통하는 연극이 너무 좋다고 한다.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감옥에서 나오면 연극을 하지 않겠냐”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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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즐거운 하루하루

논리도 늘고, 대화도 늘고, 비꼬기 스킬도 는다
폭력적인 나의 인생이여
병역거부자가 폭력적이라니 너무 아이러니컬해

그래도, 사람이 있어서 산다

애들이 덤빈다 살아가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애들이 덤빈다
에효, 논리도 없이 덤비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웃길 뿐
나 역시도 논리 없이 덤비는 게 아닐까 싶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본회퍼를 언급하는 애들을 보고 있으면 웃겨죽겠다
본회퍼의 살인계획은 히틀러를 적그리스도로 상정할 때 나왔던 것일텐데
그것도 알지 못하면서 본회퍼의 살인계획을 이야기한다

이제 진짜 재밌게 매일 글쓰고 놀겠네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된다!
요즘 꽤 심심했는데!


진짜 병역거부자가 된건가 살아가는

오늘 병무청에 전화를 하고, 담담하게 전화를 끊고, 담담하게 연락을 돌렸다
병무청에서도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이제 분명히 나는 병역거부자가 된 것 같구나

이제 다음 주로 다가온 기자회견을 이래저래 준비해야지, 생각하고
도와주시는 분과 대화를 나누다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소견서를 올려도 되냐는 말씀을 들었다

아, 원래 거기에도 글을 올리는거였지
흔쾌히 또 그러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서
왠지 글이 올라왔을 것 같아 홈페이지를 들어갔는데
못난 얼굴이 떡하니 올라와있고 내 이름이 올라가있다

실감이 난다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지

막연한 기대와 확신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때문에 더 많이 힘든 것 같기도 하고

 

이글루스를 처음 시작했는데 그리고

이건 뭐, 대충 하면 되겠거니 싶기도 하고
그래도 여기 와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길까 싶기도 하고
나는 잘 살고 있는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도 믿음이 있어서 기쁘기만 하고!

병역거부 소견서 선언하는

예수의 걸음을 따라

 

선언

 어떠한 전쟁도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진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혹은 평화를 얻기 위한 전쟁을 주장하지만 어떠한 전쟁도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없으며, 어떠한 전쟁도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합니다.

만남

 2005년에 인권위원회에서 국방부와 국회에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라고 권고했을 때, 가장 크게 반발한 단체 중 하나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개신교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이 단체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만난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원하셨는데, 이 단체는 적을 상정하고 그들을 찌르고 쏘는 훈련을 통해 이웃 사랑이 아닌 이웃 파괴를 자행하는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의 신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이 이야기가 예수의 삶을 따르노라고 목이 터져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주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현실

그때부터 시작된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은 2006년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서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던 평택에 갔을 때 제게도 현실화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현실 속에 놓인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찾았던 평택의 땅에서 만난 것은 국가의 권력이라는 것, 그리고 군사력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군인들과 경찰들의 눈빛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나를 분노의 눈길로 쳐다보던 몇몇 경찰들이 꼭 내 친구인 것 같았고, 내 선후배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내뿜는 분노의 기운은 결코 그들의 성품에서 기인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는 이름, 혹은 권력이라는 이름은 그들을 강제로 자신들의 세력에 편입시켜 그들로 하여금 폭력을 행사하게 하고 그 폭력이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의 청년들을 일선에 내세우고 그들의 뒤에 선 간부급의 사람은 “X소대, 너희 동료가 맞고 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건가!” 라며 폭력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에게 맞선 사람들은 총칼도 들고 있지 않은, 그저 여기에 사는 주민들이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주민들을 쫓아내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도 이들을 때려잡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흥분한 전경들은 돌을 던져 창문을 깼고, 그 돌은 제 머리 바로 위에 날아와 벽을 때렸습니다. 누군가는 방패에 맞아서, 누군가는 돌에 맞아서, 누군가는 곤봉에 맞아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내 친구와 같은, 내 선후배와 같은 전경들도 흥분한 시위대의 폭력에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작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폭력의 사용을 강제하는 국가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백

교회라는 공간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저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더욱 열심히 출석했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으며,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 수 있기를 항상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신학’을 공부하는 곳에 입학을 했고, 신학을 배우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만난 예수님께서 제게 항상 하셨던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저 곁에 다가가 사랑한다고 속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헐벗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다가가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라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누구도 이러한 아픔과 고통에 내몰리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어나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더욱 이 말씀이 와 닿았던 것은 내게 말씀하신 ‘이웃’이라는 존재가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원수’라고 불리는 존재들까지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이 세상의 군대에서는 그 사랑을 말하기보다는 분쟁과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적으로 상정하고 그들의 목숨을 뺏는 방법과 효과적으로 그들을 타격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제가 신앙하는 예수님은 제가 그런 자리에 가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국가와 권력의 폭력에 휩쓸려 죽음의 자리에 이를지언정 묵묵히 자신의 길을, 평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믿음

인생의 한 걸음이라도 예수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서, 내게 보여주셨던 평화와 사랑의 걸음을 걷는 것이야말로 저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그 걸음에 언제나 예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20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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